[인터뷰] 일본 동경복음교회 수석장로·(주)대영산업 대표 신용구 장로

인물 / 노승빈 주필 / 2025-10-18 04:4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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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항 소년에서 동경복음교회의 장로로
“기도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 (주)대영산업 대표 신용구 장로

장로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일찌기 일본으로 이민오게 되셨나요?
저는 제주도 서귀포의 한적한 어촌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1948년 벌어진 제주 4·3 사건으로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었지만, 슬픔 속에서도 어머니 손을 잡고 다니던 교회학교에서 받은 사랑과 말씀은 제 마음에 깊은 위로와 소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린 마음으로 영접했던 그날부터, 고난의 순간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제 안에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64년, 제가 15살을 눈앞에 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라디오가 아닌 텔레비전을 통해 ‘도쿄 올림픽’ 중계를 우연히 보게 되었고, 화면 가득 펼쳐진 현대적인 도시 풍경과 질서정연한 경기 모습은 제게 강렬한 충격과 설렘을 안겨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배운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기에, “언젠가 이곳에 가서 직접 보고 배우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제 가슴속에서 불타올랐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 한 푼 얻기조차 쉽지 않았고, 정식 유학의 문은 제게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밀항이라는 위험한 길을 택했습니다. 좁은 뱃속에서 일주일… 아니 십오일간 이어진 거친 파도와 싸우며, 밤이면 쏟아지는 별빛 아래에서 “주님, 이 길이 옳다면 저를 안전하게 인도해 주소서”라고 기도하곤 했습니다. 마침내 시모노세키항과 오카사 지역을 거쳐 도쿄역에 발을 디뎠을 때, 두려움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신 듯한 묘한 평안이 제 안에 흘렀습니다.

도쿄 미카와시마의 작은 커피점(킷사텐-喫茶店)에서 한 끼 식사를 즐기던 순간이 문득 떠오릅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커피 한 잔이 사치에 가까웠고, 그 낭만적인 다방 안에는 직장인부터 예술가, 학생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나는 그들 옆자리에 앉아 건네는 짧고 소박한 대화를 귀담아들으며, 생생한 일본어 표현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손님들이 읽던 신문을 펼쳐 시사와 교양을 쌓아 가던 시간은 마치 문화 체험 그 자체였고, 매번 커피를 서빙할 때마다 “이곳에서 나도 한층 성장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작은 확신이 차곡차곡 쌓여 갔습니다.
어느 날은 다방 구석에서 일본 유수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도쿄대-게이오대-와세다대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이들이, 미카와시마 근처에 세워진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외지인이 일본 땅을 밟는 것조차 쉽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그 대화는 내게 “여기서 나 또한 신앙의 공동체를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는 또 하나의 설렘이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에 찾아간 미카와시마교회 문은 잠겨 있었고, 알고 보니 성도들이 야외 예배를 드리러 다 함께 공원으로 나간 참이었습니다. 실망이 컸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일에는 반드시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리라” 마음에 다짐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고, 마침내 그다음 주일,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성도들의 미소 속에 안겨 첫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1974년 ‘동경복음교회’로 이름을 바꾼 교회에서, 저는 여러 목사님과 선배 장로님들께 신앙과 사역을 배워 갔습니다. 이제 돌이켜보면, 밀항의 험난함도, 커피점에서 맞은 쓸쓸한 밤들도 모두 하나님께서 제 삶의 중요한 한 걸음을 준비시키신 과정이었습니다.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오늘의 저를 있게 하셨음을 고백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미신이 넘쳐나는 일본에서 신앙생활하기가 쉽지않으셨을텐데 장로님의 신앙을 지켜나간 이야기를 해주세요.

● 신앙의 불씨를 지키다
제가 일본에서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일본은 겉으로는 평온하고 정돈된 나라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으로 무관심한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거리마다 신사(神社)와 절(寺)이 넘쳐나지만, 정작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현재 일본 인구의 약 0.4%만이 기독교인(프로테스탄트)이라고 합니다. 교파를 다 합쳐도 100만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를 포함한 전체 교회의 수는 약 8,000개 정도지만,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도쿄 같은 대도시조차도 복음의 불씨는 작고, 사람들의 마음은 냉랭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신앙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단순한 종교생활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었습니다.
일본 사회는 무신론적이고, 개인주의가 깊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신앙은 개인의 문제”라는 말이 너무 당연하게 통용되는 나라입니다. 저는 이런 현실 속에서 자주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일본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마치 얼음 위에 불을 피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불씨가 하나님께 붙잡히면 결코 꺼지지 않습니다.” 이 기도는 제 인생의 좌우명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냉랭해도, 하나님께 붙들린 불씨는 절대 꺼지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 리더십의 혼란 속에서도
동경복음교회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924년에 세워진 이래로 여러 세대가 흘렀고, 그 사이 많은 담임목사님들이 교체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바뀔 때마다 교회의 색깔이나 리더십의 방향이 달라지다 보니, 성도들 사이에 혼란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늘 기도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조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믿음 하나로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때로는 의견이 다르고, 이해되지 않는 결정들이 내려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는 사람을 중심으로 세워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위에 세워진다’는 확신으로 섬겼습니다. 사람은 바뀌어도 주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눈물 어린 기도가, 오늘의 안정된 동경복음교회를 있게 한 기초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교회의 중심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 한 영혼을 위해 10년을 기도하다
저는 평생의 신앙생활 속에서 한 가지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직장에서 일하던 시절, 일본인 동료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복음에 아주 강한 거부감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꺼내면 손사래를 치고, “그건 외국의 종교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조용히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명절이 되면 작은 선물을 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라”고 쪽지를 넣었고, 그가 아플 때는 진심을 담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그가 아내의 병으로 절망에 빠져 저를 찾아왔습니다.
“신 씨,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신가요?” 그 말이 저를 울렸습니다. 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는 결국 교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길을 잃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정한 때에 응답하십니다.” 그 동료는 세례를 받고, 지금은 다른 지역의 교회에 출석하며 믿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신 분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 재정의 위기 속에서도
교회가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성도 수가 줄고, 헌금이 감소해 운영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때 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집이 무너지는 것을 그냥 볼 수 없습니다. 주님이 제 삶을 책임지신다면, 저는 주님의 집을 먼저 책임지겠습니다.” 그 결심으로 작은 헌신을 시작했습니다.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드렸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교회의 재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새 가족들이 들어오고, 청년들이 모이고, 다시 교회에 웃음과 찬양이 넘쳤습니다. 그때 저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교회의 주인이시다.” 교회는 사람의 손으로 세워지지만, 그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 일본 땅에 부흥을
저는 이제 인생의 후반부를 걸어가며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본 땅에도 복음의 불길이 타오르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루터교 등 다양한 교단이 있지만, 그중 대부분은 노령화로 인해 교세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70% 이상의 교회가 50명 이하의 소규모 공동체이고, 30세 이하 청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일본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 불씨가 작아 보여도, 하나님께 붙잡히면 꺼지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도 교회의 문을 열고, 조용히 기도의 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일본 땅에도 부흥을 허락하옵소서. 복음이 다시 이 땅에 흐르게 하옵소서.” 이것이 저의 인생의 고백이자, 신앙의 결론입니다. 저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며, 동경복음교회가 일본 땅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장로님께서는 인쇄업으로 자수성가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해주세요.
제가 일본 땅에 첫발을 내디딘 날, 두근거림과 설렘 속에서도 마음 한편에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동경복음교회는 멀리서 온 젊은이를 따뜻하게 품어 주는 가족 같은 공동체였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여러 장로님들과 집사님들을 만나, 신앙으로 연대하는 참된 형제자매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당은 주재원 가족들과 유학생들로 늘 북적거렸고, 각자 학업과 일터, 그리고 새 삶의 도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던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하루는 우에노 공원 근처 골목에서 작은 좌판을 열고 장사를 하시던 동경복음교회 김봉임 장로님(일본 무라사키 스포츠 회장)을 우연히 뵙게 되었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지금의 ‘무라사키 스포츠’가 있기 전, 자본도 경험도 없이 땀과 기도로 사업을 일으키신 분이셨지요. 그날도 다정한 미소로 제게 다가오셔서 “신용구 군, 자네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질문은 제 가슴을 깊이 파고들어 왔습니다. 저는 가슴속에 품어 왔던 바람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여 마음껏 배우고 싶습니다.”

장로님은 눈웃음을 띠시며 “그렇다면 고등학교부터 기초를 튼튼히 다지자. 내가 믿는 분들을 연결해 주마”라고 흔쾌히 응답하셨습니다. 그 말씀만으로도 제 어깨는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후 장로님께서는 학비 마련을 위해 교회 후원 모임으로 저를 안내해 주셨고, 여러 선생님 댁에 찾아가 근면함과 성실함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교회 청소를 돕고, 방과 후에는 다방에서 커피를 서빙하며 일본어 회화 능력을 키우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저는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재일교포 문절자 권사와 사랑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문 권사 역시 3대째 이어져 온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난 분으로, 믿음에 대한 존중과 사랑으로 저를 응원해 주셨습니다. 결혼식 날, 교회 강단 아래서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을 세우겠다”는 다짐을 나누었습니다. 얼마 뒤 첫 아들이 태어났고, 그때의 감격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은 저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며 가졌던 설렘을 뒤로 하고, 저는 다시 장로님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 어르신들의 격려 속에 대영산업 주식회사(종합인쇄화공)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판재를 자르고, 인쇄기를 돌리며 뿜어져 나오는 이야기들과 잉크 냄새는 제게 또 다른 배움터였습니다. 사업 초창기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장로님들의 기도와 성도들의 지원 덕분에 한 해 한 해 터를 다져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밀항의 두려움, 커피점에서의 분주함, 교회에서 나눈 기도와 격려, 그리고 사업장의 열정 모두가 하나님께서 제 삶에 심어주신 귀한 자양분이었습니다. 세 아들을 두고 이제는 3대가 함께 예배당에 앉아 찬양하며, 동경복음교회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교회를 향한 사랑과 섬김을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작년 동경복음교회가 100주년 감사예배 설교자로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님을 초청하셨는데 50년을 기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기도와 교회소개를 해주세요.
1973년 5월, 저는 여의도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 현장을 T·V로 바라보며 평생 잊을 수 없는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당시 김장환 목사님은 통역 자리에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갈망 어린 심정과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한 글자 한 글자 우리 말로 전해 주셨습니다. 수십 수백만 명의 회중이 숨죽인 채 말씀에 귀 기울이던 그 순간, 예배당 천장 너머로 전해지는 성령의 뜨거운 임재는 제 심장을 뛰게 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이라는 외침은 제 영혼 깊은 곳에 새겨졌습니다. 그날 저는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언젠가 우리 동경복음교회가 100년을 맞는 그 감사예배에, 반드시 김장환 목사님을 모시고 같은 은혜를 누리리라.”
이 결심은 제 마음속에 깊은 기도의 씨앗으로 뿌려졌습니다. 이후 50년 동안 저는 청년부 예배와 금요기도회, 매일 새벽의 조용한 기도실에서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그 기도를 이어 갔습니다. “김장환 목사님께서 동경복음교회 100주년 감사예배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해 주옵소서!” 매주, 매달, 매년 기도 제목은 늘 그분의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그 기도는 제 신앙 여정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24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 교회에 16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신 분은 다름 아닌 젊은 김무현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는 곧바로 “이번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집회에는 김장환 목사님을 꼭 모시고 싶습니다. 한 번 연락을 드려 보십시오.”라며 제 소망을 전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미소 지으시며 제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님이 품고 계신 그 기도는 틀림없이 응답될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와 김 목사님은 매주 기도실에 모여 하나님이 허락하실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기도와 대화가 거듭되는 가운데, 우리 공동체 안에는 하나의 꿈이 자라났습니다. 바로 100주년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온 교회가 한마음으로 그날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위원회가 발족되는 순간까지, 우리가 함께 드린 기도는 어느 때보다도 간절했고, 그 기도 위에 세워진 비전은 우리의 가장 귀한 소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10월 6일, 동경복음교회 창립 100주년 감사예배 당일이 밝았습니다. 예배당 입구에 걸린 대형 현수막 아래, 김무현 목사님과 저는 떨리는 마음으로 설교단 앞에 섰습니다. 문이 열리자, 지난 한 세기 동안 이 땅에 쏟아진 하나님의 은혜가 온전히 임하며 회중의 가슴에 뜨거운 감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단상 위에 오른 김장환 목사님은, 50년 전 그날처럼 힘 있는 목소리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신다”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선포하셨습니다. 예배당 곳곳에서 터져 나온 눈물은, 반세기 기도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로 맺혔음을 증명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장로님께서 좋아하시는 성경구절과 재미교포와 재일교포 크리스찬들에게 신앙의 격려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제 삶의 길잡이요,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 준 말씀은 사도행전 16장 31절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입니다. 이 한 구절을 붙들고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제 가정을 차례로 회복시키시고, 크고 작은 위기마다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부어 주셨습니다. 새벽 첫 빛이 창문을 비출 때마다 이 약속을 되새기고 기도로 하루를 열면,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분명히 느낍니다.
제가 일본 땅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이국의 언어와 문화 앞에서 겁이 나 마음이 움츠러들었지만, 사도행전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할 때마다 제 안에 전해지는 하나님의 따뜻한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작은 가정 예배 자리에서 자녀의 손을 꼭 잡고 눈물로 드린 기도, 이웃과 함께 찬송을 부르며 나눈 기쁨의 순간들은 모두 “너와 네 집”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능력 있는지를 가슴으로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미국의 재미교포 성도 여러분,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성도 여러분, 그리고 『크리스찬 타임스』 독자 여러분께 감히 권면 드립니다. 먼 이국 땅에서 신앙을 지키는 일은 때로 외롭고 힘겹습니다. 그러나 가정 예배를 세워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서로의 삶을 나눌 때,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와 기쁨이 여러분의 가정과 공동체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약속은 교회 예배당의 공간이나 특정 시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 위에 세워진 모든 가정에 동일하게 허락된 약속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권면드립니다. 서로 연합하여 기도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지금은 온라인으로 드리는 기도 모임도, 소그룹으로 함께하는 성경 공부도, 교회와 가까운 몇몇 지체들과 나누는 개인적 기도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 예수를 믿으라”는 그 한마디 약속을 굳게 붙드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가정과 일터, 그리고 여러분이 속한 모든 곳에 부흥과 회복의 불씨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귀한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끝까지 지키시며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대담. 노승빈 (뉴스타임스 주필,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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