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뷰] 팔순에 한글과 사랑에 빠지다…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전시/공연 / 권수빈 기자 / 2025-02-21 09: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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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라이브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창작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경북 칠곡군의 일곱 할머니가 팔순의 나이에 한글과 사랑에 빠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무대 위 배우들은 실제 칠곡 할머니들의 삶을 대변하듯 ‘글자를 배운다’는 행위를 넘어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여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뮤지컬은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과 에세이집 『오지게 재밌게 나이 듦』을 원작으로 해 탄생했다. 가상의 마을 팔복리를 배경으로 문해학교에 다니는 네 명의 할머니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한평생 글을 모르고 살아오며 설움과 창피함을 느꼈던 할머니들이 글자를 배우고 시를 쓰면서 인생의 재미를 되찾는 과정을 그린다. 작품 속 뮤지컬 넘버는 모두 실제 칠곡 문해학교 할머니들이 직접 쓴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큰 감동을 준다.

‘영란’ 역에는 구옥분과 김아영, ‘춘심’ 역에는 박채원, ‘인순’ 역에는 허순미, ‘분한’ 역에는 강하나와 이예지, ‘석구’ 역에는 강정우와 김지철이 캐스팅됐다. ‘가을’ 역은 하은주가 맡아 무대에 섬세한 정서를 더한다. 배우들은 각자의 인물에 완전히 몰입해 할머니들의 따뜻하고 유쾌한 삶을 생생히 재현한다.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제작사 라이브가 주관한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시즌7’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2022년부터 기획이 시작되었으며, 리딩 쇼케이스와 실연 심의를 거쳐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됐다. 그리고 올해가 되어 지난 11일부터 27일까지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초연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노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는 사실에 있다. 그동안 대다수의 공연이 젊은 세대의 사랑이나 성장 서사를 다뤘다면 이 작품은 노년의 여성들이 ‘글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써 내려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삼는다. 배움이 지식을 얻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일임을 보여준다.

실제 문해학교 할머니들의 시가 뮤지컬 넘버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이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시들은 문학적 세련미보다는 삶의 진심이 담긴 언어로 구성되어 있어 배우들의 노래가 더욱 진솔하게 들린다. 세대 간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가족 뮤지컬적 성격도 강하다. 할머니, 어머니, 손주가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으로, 세대와 세대를 잇는 따뜻한 감정선을 형성한다.
 

사진=연합뉴스

교육적 연계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특별하다. 19일 저녁 공연에는 전국 문해학교 학생들과 교사, 관계자 등 약 300명이 초청돼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뮤지컬을 본 사람들이었고, 자신과 닮은 인물들이 무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관람 후 “참 재미있었어요”, “어쩌면 우리 마음을 그렇게 잘 안대요” 같은 소감을 손글씨로 남기기도 했다.


연출진은 이번 시즌을 위해 무대와 조명을 정교하게 다듬고, 음악 편곡에 한층 섬세함을 더해 대중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추구했다. 원작 다큐멘터리의 사실적 감동에 뮤지컬만의 생동감을 더해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담아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글을 몰랐던 노년의 여성이 문해교육을 통해 자신의 시를 쓰고 노래하는 과정은 ‘배움의 가능성’과 ‘자기 삶을 다시 써 내려갈 용기’를 일깨운다. 무대를 보고 있으면 “나는 아직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내 삶의 후반부는 어떤 글자로 채워질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팔순의 나이에 한글과 사랑에 빠진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그들 세대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삶의 어느 시점에서 다시 배워야 하는 ‘희망’의 이야기다.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관객에게 “인생 팔십 줄이라도 한글과 사랑에 빠질 수 있고,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공연이 앞으로 장기 공연이나 지역 순회 무대로 이어진다면 감동의 파장은 더 넓게 퍼질 것이다. 정말로 ‘오지게 재밌는 인생’을 보여주기 위해.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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