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뷰] 예술의 연금술사, ‘디아길레프’의 귀환

전시/공연 / 권수빈 기자 / 2025-03-30 13: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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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예술이 현실을 초월하던 시절,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 춤추지도, 노래하지도, 연주하지도 않았지만 수많은 예술가의 재능을 불붙여 유럽의 문화 지형을 바꿔놓았다. 뮤지컬 ‘디아길레프’는 바로 그 인물,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 1872–1929)의 이야기다.

 

사진=쇼플레이

2025년 3월, 대학로 예스24아트원 1관의 막이 다시 오르며 ‘디아길레프’가 초연 이후 2년 만에 재연 무대로 돌아왔다. 2022년 첫 공연 당시 “대학로에서 보기 힘든 스케일의 예술극”이라는 평을 받았던 작품은 쇼플레이의 인물 뮤지컬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전작 ‘니진스키’와 다가올 ‘스트라빈스키’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한다.

실존 인물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는 20세기 초 유럽 예술계를 뒤흔든 러시아 발레단 ‘발레 뤼스(Ballets Russes)’의 창립자다. 그는 직접 무용을 하지 않았지만 탁월한 기획자이자 미적 감각의 큐레이터로서, 니진스키·스트라빈스키·피카소·마티스·코코 샤넬 등 예술사에 남은 인물들을 한 무대 위로 불러모았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발레 ‘봄의 제전’과 ‘불새’는 예술의 전통을 송두리째 흔들며 오늘날까지도 “현대 예술의 시작”으로 불린다.

뮤지컬 ‘디아길레프’는 화려한 예술의 뒤편, 예술가이자 연출가, 동시에 탐미가로서의 디아길레프가 겪은 고독과 욕망, 사랑을 들여다본다. 그는 예술을 통해 영원을 꿈꾸었지만 결국 그 예술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고통과 마주한 인물이었다.

올해 재연의 가장 큰 변화는 캐스팅 라인업이다. 초연을 이끌었던 김종구, 조성윤, 강정우가 다시 무대에 오르며 작품의 깊이를 이어가는 한편 뮤지컬 ‘니진스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안재영이 새롭게 디아길레프로 합류했다. 무용수 한선천과 이윤영, 윤철주가 더해져 발레 장면의 완성도가 한층 높아졌다. 공연의 연출 또한 미세하게 진화했다. 시간과 공간의 전환을 영상과 조명으로 섬세하게 구성해 디아길레프의 내면 세계와 예술적 열망이 시각적으로 교차한다.

‘디아길레프’의 가장 큰 매력은 ‘예술이 예술을 낳는 과정’을 무대 위에서 생생히 재현한다는 점이다. 디아길레프가 니진스키,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화가 브누아와 함께 만들어가는 창작의 순간들은 단순한 회상 장면이 아니라 예술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무대 위 발레 장면은 극의 핵심 정서로 작용하며, 관객은 음악과 움직임, 언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총체 예술(Gesamtkunstwerk)’의 경험을 체험하게 된다. 조명은 디아길레프의 심리적 변화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며, 영상은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예술가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그려낸다.

‘디아길레프’는 결국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가란 어디까지 인간일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이다. 니진스키의 광기, 스트라빈스키의 천재성 그리고 그 사이에서 모든 것을 조율하려 했던 디아길레프의 손끝은 20세기 초 파리의 예술을 넘어 지금 우리의 현실에도 닿는다.

화려하지만 덧없는 예술의 세계에서 그는 ‘완벽을 추구한 연금술사’로 남았다. ‘디아길레프’는 불안하고 아름다운 집착을 2025년 봄 다시금 무대 위에 되살려낸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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