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추사·윤형근의 ‘선(線)’, 세 개의 시대를 잇다

전시/공연 / 권수빈 기자 / 2025-02-15 14:02:53
  • 카카오톡 보내기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18세기의 겸재 정선, 19세기의 추사 김정희 그리고 20세기의 윤형근는 시대도, 표현 방식도 다르지만 ‘필(筆)’과 ‘묵(墨)’으로 이어져 있다. S2A갤러리에서 지난 4일부터 오는 3월 22일까지 열리는 ‘필(筆)과 묵(墨)의 세계: 3인의 거장’ 전시는 한국 미술의 흐름을 세 인물의 ‘필획’으로 풀어내는 기획이다.

 

사진= S2A

겸재 정선(1676~1759)은 한국 산수화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이다. 그는 중국 화법을 답습하던 조선 화단에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는 자국적 미감을 도입했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연강임술첩’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10년 만에 일반에 공개됐다. 현실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필획과 묵의 농담으로 감정의 결을 드러내는 정선의 세계는 한국 회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조선 후기의 서예가이자 학자, 예술적 실험가였다. 그는 전통의 예서체와 자신의 독자적 필획을 융합해 ‘추사체’라 불리는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다.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고전 속에서 새로움을 길어 올리는 그의 태도는 문자예술을 추상미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이번 전시에서는 제주 유배 시절과 과천 시절의 간찰 등이 함께 소개돼 추사체의 변화와 완숙함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윤형근(1928~2007)은 전통 회화의 ‘필묵 정신’을 현대 추상미술의 언어로 확장한 화가다. 그는 붓과 먹의 농담, 번짐, 여백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내면을 그렸다. 단 두 가지 색 번트 앰버(암갈색)와 울트라마린(군청색)으로 이뤄진 그의 화면은 단순하지만 깊다.


정선의 진경산수는 자연을 향한 붓의 탐구였고, 김정희의 서예는 사유의 흔적을 새기는 선(線)이었으며, 윤형근의 추상은 존재의 본질을 그려내는 필묵의 확장이었다. 세 예술가의 공통점은 “선 하나에도 정신이 깃든다”는 믿음이다. 그들의 붓끝에서 이어진 선은 예술의 본질에 관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의 뿌리인 ‘필묵의 미학’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다. 관객은 각 시대의 거장이 남긴 붓의 흔적을 통해 예술의 변화와 ‘정신의 연속성’을 체험하게 된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기획에 참여해 해설적 깊이를 더했으며, 전통과 현대, 회화와 서예, 추상과 구상이 서로 맞닿는 지점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 뉴스타임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