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뷰]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절망 속에서도 예술로 살아남은 인간의 이야기

전시/공연 / 권수빈 기자 / 2025-09-29 14: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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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다시 무대 위로 돌아왔다. 9월 20일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개막한 이번 시즌은 개막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탄탄한 캐스팅과 한층 정제된 음악적 완성도로 또 한 번 ‘가을 대표 심리 뮤지컬’의 자리를 굳혔다. 초연 2016년 이후 관객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온 이 작품은, 음악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예술적 침묵과 재탄생의 순간을 정교하게 그려내며 매 시즌 ‘예술과 인간성의 경계’를 묻는다.

 

사진=HJ컬쳐

침묵 속에서 피어난 음악의 연극
이 작품은 2016년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6%를 기록하며 단숨에 창작 뮤지컬의 성공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2018년, 2020년, 2022년 그리고 올해까지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각 시즌은 라흐마니노프의 내면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해왔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무대 위의 고독’이 세상의 정서와 맞물렸고, 2022년에는 피아노 라이브 연주와 배우의 감정 연기가 완벽히 조화를 이루며 ‘음악이 연극을 지배하는 순간’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절망을 연주한 마지막 낭만주의자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는 20세기 초 러시아 낭만주의 음악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린다. 피아노 협주곡 2번, 보칼리제, 전주곡 3번 등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은 풍부한 선율과 감정의 파동으로 유명하지만 그 화려한 음악 뒤에는 깊은 절망과 자기 의심의 그림자가 있었다.


1897년, 그의 교향곡 1번은 초연 당시 비평가들의 혹평 속에 ‘재앙’으로 기록됐다. 그는 이후 3년간 작곡을 멈추고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때 그를 구한 사람이 바로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Nikolai Dahl)이었다. 달은 음악 치료와 최면 요법을 통해 그가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도왔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오늘날 그의 대표작인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예술과 상처 사이의 인간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예술가의 내면을 섬세한 심리극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화려한 오케스트라 대신 피아노와 현악 4중주가 중심이 되어 배우의 감정선을 실시간으로 따라간다. 극에서 음악은 배경음이 아니라 라흐마니노프의 내면이 직접 들려주는 ‘심리의 언어’로 기능한다.


극 중 라흐마니노프는 불안, 상실, 자기혐오, 완벽주의에 갇힌 인물로 등장한다. 반면 니콜라이 달은 그의 무너진 자아를 마주하게 하는 거울이자 ‘음악으로의 귀환’을 이끌어내는 인물이다. 두 인물의 대화는 곧 작곡가의 내적 독백이며 음악적 구조와 대사 리듬이 서로를 반향한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간, 그 치유의 드라마”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이 연극을 이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대사와 음악이 자연스럽게 엮이며 ‘심리치료의 과정’이 곧 하나의 교향곡처럼 구성되어 있다. 피아노의 낮은 음은 그의 절망을, 상승하는 선율은 그의 회복을 상징한다.


예술가의 트라우마를 신파적 감정 대신 절제된 미학으로 다뤘다. 연극적 장치와 음악적 서정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심리극의 특성상 두 인물의 호흡이 공연의 긴장감을 결정한다. 무엇보다 라흐마니노프의 실존적 고뇌를 통해 ‘예술은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진다.

뉴스타임스 / 권수빈 기자 ppbn0101@newstimes.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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